[나우누리][버터빵] 하루살이와의 대화 (4153/37583)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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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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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하루살이와의 대화 (4153/37583)

포럼마니아 1 8,677

- 서문 -

하루살이들은 하루를 우리의 수명과 같은 70년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의 1분은 하루살이에게는 425.83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며, 우리의 1초는
하루살이에게는 7.09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며, 우리의 3.385초는
하루살이에게는 하루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보다 25500배나 더
오래사는 우리들은 그들에게는 신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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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열라 이상한 날이었다. 잠자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해는
중천이었고, " 밥 줘~! " 라고 소리쳤지만 늦게 일어난 놈은 밥도 없단다.
약속에 늦어버린 난 엄마한테 돈을 타서 택시라도 타고 나가려고 했지만
엄마는 이제 돈도 안준다. 백수는 이래서 서럽다. 열받은 김에 방에 들어와
책상을 손으로 치며 " 엄마는 돈도 안줘~! " 하구 엄마 들으라는 듯 소리도
쳤지만 말짱 꽝이다.

그래서 할일도 없기에 의자에 앉아 코를 팠다. 자꾸 누가 보는 것 같아서
이상했지만 암튼 계속 파대고, 손톱에 걸려나오는 코딱지는 의자 밑에
붙여놓았다. 안방의 의자 밑에도 코딱지 붙여논 건 아마 아무도 모를 꺼다. 냐하~

그렇게 앉아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방바닥에 누워 굴러도 보았다. 이리 저리
뒹굴 뒹굴 구르다가 방 천정을 보니 푸하~ 하루살이 10마리가 일렬로 날고
있었다. 웃기네 거. 옆집 아줌마가 요새 이상하게 하루살이가 들끓는다며
에프킬러로 다 죽였다고 하던데.. 이 하루살이들이 약먹고 어케 된 거 아녀..

근데 하루살이 한마리가 밥먹는데도 날아다녔다. 아빠가 열받으셔서 손으로
휘휘 쫏아보내시긴 했지만 괜히 기분이 나쁘신 듯 엄마한테 " 당신은 집안
청소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게 다 날아다녀~! " 그러셨고 엄마는 질세라 "
그러는 당신은 내가 치우는 거 한번이라도 도와줘 보셨어요~!! " 하면서
대드신다. 두 분 싸움 끝도 없을 것 같아 보기 싫어 그냥 내 방에 와서 잠이나
잤다.

그러나 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떠 보니 이건 왠 하루살이? 요새
하루살이는 다리도 무나?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네 놈때문에 지금 엄마 아빠
싸우시는 거니까 괴씸한 생각이 들어서 손으로 쳐 죽여버렸다. 내일 학교 가면
애들한테 요새는 하루살이도 피를 빤다고 이야기하면 믿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자는데 자꾸 눈 앞에서 뭐가 왱왱거렸다. 눈을 떠보니, ..
지겹다 하루살이. 이젠 눈 앞에서.. 자꾸 날아다니는 게 신경질 나게 해서
그냥 죽이려고 했는데, 보니까 이 하루살이는 뭔가 이상했다. 한쪽 날개를
비리비리거리며 날아다니는데, 그냥 맴도는게 아니라 어떤 일정한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글자 같기도 하고..

그러다 난 소름이 쫘악 돋았다. 그 하루살이는 글씨 모양대로 날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린 피를 빨지 않아요." 라는 글씨대로.. 왠지 섬뜩했고, 순간 그
하루살이는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이 아래로 떨어져 죽어버렸다.

설마.. 그럴리 없다. 하루살이가 글씨를 써? 말두 안된다. 하지만.. 마음이
꺼림찍하고 아까 죽인 하루살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짜피 하루사는 불쌍한 곤충인데 그냥 살려둘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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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生기 2875년 8월 27일

오늘은 옆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졸리날라리가 아이를 낳았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신님의 형벌이 없기에 편히 살 수 있지만 옆나라의 신은
에프킬라라는 무시무시한 구름으로 대부분의 하루살이 동지들을 전멸시키셔서
우리나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새로 태어나 귀엽게 동글거리는 알을 보자니 마음이 무척이나 기쁘다. 과연 이
아이는 나고 자라서 무엇이 될 것인가...



日生기 2875년 10월 19일

우리 신님이 한 달전부터 몸을 서서히 일으키시더니 오늘에서야 다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하룻동안 엄청난 울림의 소리를 내셨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오래 사신 노띵날라리께 여쭈어 본 결과 " ㅂ ㅏ ㅂ . ㅈ ㅜ ㅓ. " 라는
말씀이라 한다. 도대체 무슨 거룩한 계시이실까..

졸리날라리가 낳은 알이 이제 꿈틀거리며 애벌레가 되었다. 귀여운 것. 이제
몇년만 더 있으면 이 아이도 우리처럼 하늘을 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이름을 못지어 걱정이다.



日生기 2876년 3월 21일

갑자기 땅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가 나더니 신님이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귀가 찢어질 정도의 엄청난 마찰음이 난 후 하늘을 향해 뭐라고
외치셨다. 이 외침은 만 하룻동안 계속되었다. 우리 하루살이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노띵날라리께서는 " ㅇ ㅓ ㅁ . ㅁ ㅏ . ㄴ ㅡ ㄴ . ㄷ ㅗ ㄴ .
ㄷ ㅗ . ㅇ ㅏ ㄴ . ㅈ ㅜ ㅓ ~ ! " 라는 소리라고 해석하신 후 저 소리가
울려퍼지면 신께서는 항상 노여움을 참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어느새 날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는 졸리날라리의 아들 멀리날라리가
대견스럽다. 사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 아이의 아빠인 것을..



日生기 2890년 7월 19일

우리의 신님께서는 얼굴에 우리가 10마리정도 한꺼번에 들어가도 괜찮을만한
크기의 깊은 구멍을 4개, 그리고 가끔 열리는 무지막지하게 큰 구멍 하나를
가지고 계신다. 그 중 가운데 위치한 검은 1쌍의 구멍에 1달전부터 손가락을
넣어 서서히 움직이고 계신다. 가끔 손가락이 구멍에서 나올때면 거기엔 우리
몸집의 서너배 정도 되는 노오란 고체가 끝에 매달려 나오곤 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색의 물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 구멍은 신님의 보물 광산이
아닐까 한다. 대단하신 신님..

어느새 다 자라 이제는 멋지게 하늘을 나는 멀리날라리가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 한다고 한다.저 녀석 장가나 가는 걸 보고 죽어야 할텐데..



日生기 2897년 2월 7일

드디어 멀리 날라리가 성인식을 한다고 한다. 살아돌아올 확률이 반도 안되는
모험.. 우리나라를 전부 돌아다니고 그 증거로 안방대륙의 의자 밑에 붙어있는
신님의 노란 보물을 떼어오는 것이다. 마을 하루살이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처절한 눈빛이 안쓰럽다. 내 앞에서 인사를 할 때는 말리고도
싶었으나, 아들아. 잘 다녀오거라. 네가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네가 내
아들이라는 걸 밝히고 후계자로 삼겠다.

신님은 바닥에 누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회전시키고 계신다. 아마
바닥을 다지는 중이 아니실까 한다. 신님. 우리 아들을 보호하소서.



日生기 2900년 2월 12일

전부터 계속 되어온 모기족과의 마찰이 본격화되었다. 모기는 감히 우리
신님의 피를 빨아먹는 악마와도 같은 놈들이다. 물론 그네들은 암컷들이 알을
낳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날카로운 눈빛과 뾰족한 주둥이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사건은 날아가던 우리 하루살이족의 최고의 미살이 아름날라리를 몇마리의
모기들이 성희롱하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몇마리의
하루살이들이 대들었고, 폭행사건으로 번지며 급기야는 한마리의 하루살이가
희생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 힘없는 하루살이들은 전쟁을 할 수 없다. 억울하게도
사과를 하고 돌아서는 나의 날개는 축 쳐져 날아갈 힘도 없었다.

오늘따라.. 여행을 떠난 멀리날라리가 보고싶다..



日生기 2902년 7월 1일

오늘.. 우리 하루살이들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노띵날라리께서 숨을 거두셨다.
노띵 날라리의 축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10마리의 하루살이들이 1렬 종대로
비행하였다. 신님의 말씀을 받들 후계자로 욜라날라리를 지명하고 돌아가시긴
했지만, 우리 하루살이들은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져 간다. 이제 나도 일생의 반을 넘게 살았다. 그 동안
슬펐던 일도, 기뻤던 일도, 그렇게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졸리날라리와의 사랑이었다.

나 또한 성인식을 하러 우리나라를 누비다가 갑자기 다른 나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목숨을 걸고 옆나라로 향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고, 가까스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다가 땅에 떨어져 고통스러워 하는
졸리날라리를 보고 구출을 하여 함께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없다. 그때의 독이 쌓인 탓인가.. 얼마 못살고
죽어버렸다. 멀리날라리를 남겨놓은 채로. 멀리날라리를 볼때마다 그녀 생각에
슬퍼지곤 했지만, 이젠 멀리날라리 조차 없다.

이제 이 녀석도 중년이 되었을텐데.. 아직도 안돌아오는 걸 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이미 다른 하루살이들은 그를 포기한지 오래다. 하지만 난 믿는다.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걸.

왼쪽 날개가 뻐근하다. 이젠 나이먹었다고 신경통까지.. 허탈함에 웃음이 나온다.



日生기 2093년 3월 2일

드디어 돌아왔다. 장한 내아들 멀리날라리가 돌아온 것이다. 이젠 연륜이 쌓인
얼굴에 그 동안 온갖 고생을 한 듯 다리가 5개밖에 없었지만 돌아온 것으로도
나에게는 축복이다.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날아다니다 잠시 벽에 앉아 쉴때 우리의 신님보다
더 큰 신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다는
이야기며, 부엌대륙에 갔다가 처음으로 신들의 큰 구멍으로 거대한 음식물들이
들어가는 장면은 본 이야기며, 갑자기 신님의 손이 다가오기에 기를 쓰고
10여일을 도망쳤지만 그 손은 끝도 없이 쫏아와서 결국 다리 하나를 그때
잃었다는 이야기며,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것보다 안방대륙의 의자 밑의 노란
보물이 엄청나게 많이 붙어있더라는 이야기며....

그리고 어느새 신님의 말까지 알아듣게 되어 무슨뜻인지는 모르지만 방금
신님이 " ㅇ ㅕ ㄹ . ㄹ ㅏ . ㄷ ㅓ . ㅇ ㅜ ㅓ." 라고 말씀하셨다며 씨익
웃는 그를 보며 난 가만히 돌아섰다. 그에게 굳이 내 아들이라고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다른 하루살이들은 그를 의지하고 있는 듯 했으니까.

이젠... 족장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되었나 보다..



日生기 2905년 5월 16일

그렇게 비극은 시작되었다.

전에 전쟁이 날 뻔 했지만 족장인 나의 사과로 끝나버린 그 성희롱 사건을
들은 멀리날라리는 기어코 말리는 나를 제쳐두고 모기족에게 항의를 했으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모기족은 멀리날라리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멀리날라리가 신 근처를 날아갈때, 모기족중 가장 피를 많이 빤다는
검은 모기를 시켜 신님의 다리에서 피를 빨게 하였고, 신성한 신의 피를 빠는
모기들을 본 멀리날라리는 예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검은 모기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때, 문득 눈을 떠버린 신님은 자신의 피를 빤 범인을
멀리날라리로 단정 지으신 듯 그 큰 손으로 멀리날라리를 덮치셨고, 우리
멀리날라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신의 손에 무참히 으깨어졌다.

이제.. 난 더이상 살아갈 여력이 없다..



日生기 2905년 5월 17일

난 결심했다. 이제 한쪽 날개마져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족장직은
끌리날라리에게 물려주기로 했고, 더 이상 난 존재 가치가 없다. 이대로 난
늙어 죽을 것이다. 하지만 죽기전에 할 일이 있다. 멀리날라리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

신에게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에게 나의 뜻이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도해보는 것... 하루살이 역사상 최초로 신에게
나의 뜻을 전달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신님의 다리 피를 빤 건
멀리날라리가 아니라는 걸 신에게 해명해야 한다. 죽어버린 나의 멀리날라리의
한을 풀기 위하여.

갈 때가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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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괴상한 일을 겪으며 오늘도 하루가 다 가버렸다. 신님. 만약 신님이 절
보고 계신다면 제발 돈뭉치 하나만 뚝 떨어뜨려 주세요. 내일 약속에 나갈 수
있도록. 그런데 과연 신은 있는 걸까. 그럼 그 신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까?
그렇다면 하루살이에게는 내가 신이 되는 걸까? 그럼 나를 보는 신에게는 내가
하루살이가 되는 걸까?

에라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잠이나 자자. 잠을 청하며 눈을 감는 순간,
천정에 하루살이들이 이번엔 20마리 정도가 일렬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왠지... 슬퍼보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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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1:53
참을인 세번이면 호구..그러니까 할말은 하고 살아요 우리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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